[ JMS / 정명석 목사의 설교 ] 모르는 소경과 하나님의 새 역사 / 마태복음 15장 13-14절, 누가복음 6장 39-4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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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마태복음 15장 13-14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누가복음 6장 39-40절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신약 때 하나님은 이 땅에 구원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인들은 시대의 눈을 뜨지 못 하여
반대하고 불신하고 외면하고 무시하고
막고 핍박하고 싸우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
<구약인의 율법>과 <그들의 말>을 절대시했기에
그리도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사울은
자신이 ‘시대의 소경’이었음을 깨닫고
<시대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시대의 눈을 뜬 사울은 ‘새 역사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되어 예수님을 증거 하기 시작했습니다.

<메시아 예수님>이 살아 계시며 그렇게 복음을 전하고 활동했어도
사도 바울은 ‘무지의 소경’이었기에
<예수님의 육신>은 따르지 못했고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시대의 눈’을 떴습니다.

모르는 것을 두고 소경으로 비유해 말합니다.
혹 자신이 다 안다고 하나 일부만 아는 것도 있고
완전히 아는 것도 있고 아예 모르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모르는 소경의 말’을 들으면, 그들과 같이 모르게 되고
똑같이 못 보는 것과 같습니다.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가 눈을 떠서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시고,
각종으로 역사하며 깨우쳐 주시니
모두 각 분야에 눈을 떠 형통하길 기도합니다.

[ JMS/ 정명석 목사의 2017년 8월 13일 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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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총재 설교 – 삼위가 걱정하시지 않게 하려면 끝까지 해야 된다 끝까지 해야 의문도 오해도 풀리고 손해 간 것도 얻는다 / 시편 23편 5절

정명석 총재 목사 주일 설교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성령님께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걱정하시지 않게 해 드릴까요?”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성자도 나 성령도 걱정하지 않게 해 주려면, 누구나… 끝까지 해야 된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 알파와 오메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안’에 모든 계획이 질서 있게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끝’을 벗어나서 주지 않으십니다.  시작할 때 조금 주시고, 중간부터 조금 더 주시고, 끝나기 전에 점점 많이 주시다가,  끝장에 ‘최고의 것’을 주십니다.

다 하고 끝났을 때, 끝까지 다 겪고 나면 ‘각종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같이 섭리하십니다. 생각해 봐요. 직장에서도 일이 다 끝나야 ‘월급’을 줍니다. 일당을 받는 자라도 하루 일이 다 끝나야 ‘일당’을 줍니다. 건축을 할 때도 처음에는 ‘착수금’만 줍니다. 그러다 일이 다 끝나면 ‘일한 대가’를 줍니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하든지 ‘각종 고난·역경·문제들’은 처음에도 있고, 과정 중에도 있고, 끝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에 고난·역경·문제들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의문과 오해’가 풀리고, ‘그동안 손해 간 것’을 얻고, ‘수고의 대가’를 받을 때는 끝났을 때입니다. 하나님도 그동안 수고한 것의 대가는 ‘끝’에 주십니다. 고로 끝까지 해야 됩니다.

구원도 ‘끝까지 행하며 견디는 자’가 받습니다. 처음에는 주를 믿고 따랐어도 끝까지 안 믿고 떠난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의 인물들도 끝까지 했기에 모든 의문과 오해를 풀고, 축복을 받고, 해같이 빛나게 됐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를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직접 왕이 되어 통치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 ‘왕’을 달라고 부르짖으니, 하나님이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게 했습니다.
사울은 준비하지 않고 연단받지 않고 ‘왕위’에 올랐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정치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사무엘 선지자도 고통을 겪었고, 선지자 대접도 못 받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행하여 다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하나님이 준비시킨 다윗을 택하게 되었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시기 질투하여 다윗을 죽이기 위해 온갖 추악한 짓을 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로부터 오는 괴로움과 고통’을 하나님 마음에 들게 잘하는 ‘다윗’을 보고 해소하며 다윗을 위해 끝까지 기도해 주었습니다. 결국 사울 왕은 전쟁에서 패하고, 자신도 자살하여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 후 다윗이 ‘왕위’에 올라 하나님의 뜻대로 정치를 했고, 사무엘 선지자도 높임을 받게 됐습니다. 끝까지 하니 의문도 다 풀렸고, 사울로 인한 한도 다 풀렸고, 얻을 것도 얻게 되었습니다.

다윗 왕을 볼까요? 다윗 왕도 사울로부터 온갖 환난·핍박·고통을 받았고, 이웃 나라로부터 전쟁의 고통을 받았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함께하시어 다 승리하여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리게 되었고, 왜 그동안 사울로부터 그렇게 고통을 받았는지 모든 의문도 풀게 되었고, 하늘과의 사이에 오해되는 문제도 다 풀렸고, 그동안 참고 견딘 것의 대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로 하나님께 고백했습니다. 시편 23편 5절에 그 고백이 나와 있지요?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의 목전이 바로 ‘끝’이 아닙니까? 끝까지 했더니, 끝에 가서 다 갚아 주셨습니다. 다윗이 끝까지 연단받고 행하여 받았으니, 사탄도 힐문하지 못합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은 ‘꿈’ 때문에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애굽에까지 팔려가 ‘종살이’를 했습니다. 거기서 또 이성의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게 됐습니다. 옥에 가서 옥에 갇힌 자들의 ‘꿈’을 풀어 주었고, 결국 ‘왕의 꿈’까지 풀어 주어 애굽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됐습니다.  어떤 환난과 어려움도 다 이기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랑하며 끝까지 갔더니,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고, 자신을 미워하여 애굽에 팔아넘겼던 형제들이 굴복했고, 하나님의 뜻도 풀고, 사연도 풀고, 소원도 성취하게 됐습니다.

선생도 그같았습니다. 시대 말씀을 불신하고 악평하는 자들이 사랑과 진리와 이성의 누명을 씌우고 억울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어이 모두를 사랑하게 하시어, 이곳에서도 ‘진리와 사랑’으로 변함없이 끝까지 행하여 결국 하나님의 창조 목적, 휴거 역사를 이루고 말았습니다!

끝까지 해야 합니다. 모두 끝까지 행해야 ‘개인의 의문, 시대의 의문’이 다 풀어집니다. 과정 중에는 ‘하나님의 은밀한 비밀’이라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하여 다 완성하면, 그때는 ‘눈’에 보이게 되니 부인할 수 없습니다. 고로 행한 자가 보고 깨닫게 되고, 답이 보입니다. 그때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주가 원하시는 최종 목적지까지 끝까지 행하여 자신의 한을 풀고 얻을 것을 모두 얻으시는 주인공이 되시길 바랍니다.

 

<2015년 12월 13일 정명석 목사의 주일말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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